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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한중록

by prophetess 2023.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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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결핍이 사람을 병적인 상태로 만드는가

영조는 왕가 혈통이나 서출로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다. 영조는 형인 경종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왕세제의 신분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형인 경종을 독살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에 한평생 고통받았다. 게다가 모친인 숙빈 최씨의 출신은 무수리였는데 궁녀의 시중 등 허드렛일을 하는 여자 종이었다. 적장자상속의 원칙이 있던 조선에서는 엄청난 콤플렉스 요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 왕으로서는 드물게 장수하며 최장기 집권을 했지만,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게 되는 등 개인적 곡절이 많았던 왕이다. 

 

영조는 학구열이 대단했다. 모든 선비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조선의 왕으로 한평생 학업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으나 영조만큼 경연에 열중한 왕도 없었다. 태종부터 정조까지 역대 왕들을 보필해 왔던 잔뼈 굵은 대신들도 영조 앞에서는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고 하니 그 열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왕위 계승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공부에서 찾았으니, 공부를 게을리하는 늦둥이 아들 이선이 마음에 차지 않았을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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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고 표현하기에 영조의 행동에 지나친 점이 있다. 사도세자뿐만 아니라 신료들에게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좋아하는 자식과 싫어하는 자식을 나누어 지나치게 편애했다. 한날은 정성왕후의 병문안을 갔다가 화완옹주와 사도세자가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싫어하는 자식과 좋아하는 자식이 한자리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 영조가 난리를 쳐서 사도세자가 경황이 없어 창문으로 도망 나온 일도 있다고 한다. 압권은 정실인 정성왕후가 세상을 등졌을 때인데, 같은 날 화완옹주의 남편인 정치달이 죽자, 아내의 장례는 내팽개치고 죽은 사위의 문상을 먼저 갔다는 것이다. 심지어 궁으로 돌아와서는 곡을 하고 있는 사도세자에게 옷차림이 그게 뭐냐며 꾸중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이 있어도 현대 사람들은 '영조'하면 탕평책보다는 아들을 학대하고 굶겨 죽인 비정한 아버지로 먼저 기억할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

영조가 하도 심하게 닦아세우는 탓에 사실 사도세자는 왕이 될 수 없는 상태가 맞긴 했다. 임오화변 직전의 사도세자는 양극성 장애가 극에 달해서 궁인 100여 명을 살해하고 자기 자식을 둘이나 낳은 후궁을 때려죽이는 일까지 벌였다. 그렇다면 왕위를 세손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었는데 세손의 정통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도세자가 살아있으면 안 됐다. 신하들의 반대로 자결을 명할 수도 없고 옥에 가두어 죽이는 방법도 요원하니 뒤주에 가두어 굶겨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무리 종묘사직을 위해서라지만 다 큰 자식을 굶겨 죽이기를 결심한 것이 제정신인 사람이 할법한 발상인지 의문이다. 

과연 나라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종잡을 수 없는 시아버지와 양극성 장애인 남편 사이에서 혜경궁이 할 수 있는 별달리 없었을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정신력이 강한 여성인지 남편을 죽인 시아버지에게 '덕분에 우리 모자가 살아있다'는 말까지 한다. 그 이후에도 친정 형제들이 유배 가고 죽는 모습을 보고, 아들인 정조까지 먼저 떠나보냈는데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한중록에 나와 있듯이 죽지 못해서 산 삶이었기에 영면이라 말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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